19년 12월기
1
H의 생일선물로 녹보수 화분.
6
연말결산을 하듯 힘들어하는 사람들. 엄청 춥다.
7
겨울방학 시즌 시작. 토요일 출근.
8
TRPG. 막바지 세션.
12
개피곤. 헝거 스트라이크: 단식투쟁. 단어 '스트라이크'의 그 뉘앙스는 한국어로는 닿질 않는데, 실제로 이런 종류의 언어 간 오차가 각 사회 구성원들의 정신에 당연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즉 민족성이란 외국어/내국어의 번역 한계선을 넘나드는 공/수세 일지에 의해 형성되지 않겠는지? 그러니까 근대문학이 종언됐다는 것은 바로 그 가상의 1국 민족 일지에 주되게 개입하고 있는 주체들의 전체 지분분배에서, 근대문학의 지분이 돌이킬 수 없는 매도를 당했다는 이야기. 그로부터 현대문학을 정의한다면, 그것은 1) 번역 불가능점을 향해 치달으려는 어떤 것, 인 동시에 2) 모국어로 쓰인 번역문학이다. 다시, 근대문학이 민족의 언어계에서 자신의 지분을 가질 수 있었던 원동력은 번역 권력. 그리고 그 권력의 박탈이 그것의 종언. 근현대라는 역사축을 잠시 가리고, 만약에 오늘날 문학이 다시금 사회에 개입할 수 있다면 그 방식은 번역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까 무엇들 사이의 번역으로 들어갈 것인지, 근대에는 모국과 외국이었던 뭔가를, 오늘날 무엇과 무엇으로 바꿔놓을 것인가를 통해 맹목적인 형식욕을 넘어, 염병할 놈의 영향력을 얻거나 하다못해 실패할 수 있을 것이다. 흘러가는 것(쓰레기 강)으로서 오늘날 공동체 언어계의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어떤 무엇의 자막과 스크립트들, 광고-기사들, 커뮤니티/SNS의 활자소음에 대한 스트라이크여야 할 뿐만 아니라. / ...와 같이 문학의 이중 과제를 정한 뒤 문단(그것이 무엇이며, 앞으로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문학에 과제라는 틀을 지우고 싶지 않다면, 산업이라는 개념 아래서 다룰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문단에 대한 '장르측' 비판에서 주로 드러나는 것 같다. 그건 결국 작가의 노동자성 이야기와 조직화(ㅇㅇ협회)로 귀결될 텐데, 조직화는 한편 독점적 지위의 강화와 생산수단 소유까지를 뜻하기 때문에, 그게 그저 또 다른 문단(그리고 또 다른 원한)을 만드는 결과를 넘어서려면 그쪽도 결국엔 스스로 문학의 미래상(과제)을 정해야 한다. 문학의 과제는 문학 행위 자체에 내재되어 있으며, 그것은 문학 활동의 역사적 총합의 전진 속에서 실현되는 것이라고 마음 편히 생각할 수 있는가? 마음이 점점 불편해지는 것이 바로 전진이다. 왜 시발 이런 얘길?
13
경기 여주로 사내 워크숍. 남한강일성콘도. 강가 옆에 있는 절 신륵사. 여주박물관 커피숍. 여주대교. 고깃집. 나랏님 이천쌀밥. 롯데프리미엄아울렛이천점. 이천도자기에서 잔 구매.
22
망원에서 머물다. 영 불편한 잠자리. 기타.
24
H와 골뱅이소면, 버섯/애호박 부침.
26
노래모음집 집회꿈 배포 시작. 다가오는 공연 개쫄림.
28
사자를 만나고 있을 때 사자가 연재 시작. 서기장 3부작이 시집보다 훨씬 나을 것도 같다는 생각. 던전으로 하혜희 시가 나갈 예정인데 곡창에서 에셉 맞불 연재로 나 자신과의 절망의 경쟁 끝에 결정해 보겠다. 에셉은 그냥 처쓰고 개발새발 만들면 그만인 것 같은데 시집은 시인선이 아니면 어렵다는 느낌. 도대체 얼마나 쓰루를 많이 받고 서로한테들 기대는 장르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묶어 놓고 보니 시집이라는 양식 자체가 맘에 안 차는 것이다. 이렇게 말해보고 싶다. 시는 이미 결론이 나왔고, 다른 예술들(그리고 예술이 아닌 것들)이 시의 시체를 잘게 찢어 가져가고 있다. 시의 독자는 여전히 남아 시인의 오라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시인은 생산되고 있지만, 시 자체는 뉘앙스 같은 뭔가로 남았다. 결과적으로... 시는 오늘날 한국에서 사실상 시인선이라는 형식과의 관계를 통해서 자신을 정의하는 무엇이 되었다. 따라서 시를 만약 쟁취해야 할 뭔가로 본다면(거기 무슨 이상이 있다면), 현대 한국에서 그것은 1차적으로 시인선이라는 양식과의 싸움 양태가 될 수밖에 없다. 시집이라는 물리적 종합 자체가 그, 싸워서 반드시 지는 판으로의 진입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곧 시집이라는 양식의 귀결이 시인선인, 이건 이상한 구조다. 점프를 좀 뛰어,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뭐냐면 시집최종원고(2).hwp를 숙려 끝에 거의 반려시켰다는 것. 생각을 더 해보자. 아니면 그 반대(생각을 중단시키기)가 맞을 수도 있다.
29
공연. 잘 못했지만 조촐하고 좋았다. 감사한 마음.
31
청소하고 단축근무. 좋은 기분으로 퇴근. H는 오징어볶음소면, 나는 부침을 만들고, 연어회와 함께 막걸리. 가요대제전.
H의 생일선물로 녹보수 화분.
6
연말결산을 하듯 힘들어하는 사람들. 엄청 춥다.
7
겨울방학 시즌 시작. 토요일 출근.
8
TRPG. 막바지 세션.
12
개피곤. 헝거 스트라이크: 단식투쟁. 단어 '스트라이크'의 그 뉘앙스는 한국어로는 닿질 않는데, 실제로 이런 종류의 언어 간 오차가 각 사회 구성원들의 정신에 당연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즉 민족성이란 외국어/내국어의 번역 한계선을 넘나드는 공/수세 일지에 의해 형성되지 않겠는지? 그러니까 근대문학이 종언됐다는 것은 바로 그 가상의 1국 민족 일지에 주되게 개입하고 있는 주체들의 전체 지분분배에서, 근대문학의 지분이 돌이킬 수 없는 매도를 당했다는 이야기. 그로부터 현대문학을 정의한다면, 그것은 1) 번역 불가능점을 향해 치달으려는 어떤 것, 인 동시에 2) 모국어로 쓰인 번역문학이다. 다시, 근대문학이 민족의 언어계에서 자신의 지분을 가질 수 있었던 원동력은 번역 권력. 그리고 그 권력의 박탈이 그것의 종언. 근현대라는 역사축을 잠시 가리고, 만약에 오늘날 문학이 다시금 사회에 개입할 수 있다면 그 방식은 번역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까 무엇들 사이의 번역으로 들어갈 것인지, 근대에는 모국과 외국이었던 뭔가를, 오늘날 무엇과 무엇으로 바꿔놓을 것인가를 통해 맹목적인 형식욕을 넘어, 염병할 놈의 영향력을 얻거나 하다못해 실패할 수 있을 것이다. 흘러가는 것(쓰레기 강)으로서 오늘날 공동체 언어계의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어떤 무엇의 자막과 스크립트들, 광고-기사들, 커뮤니티/SNS의 활자소음에 대한 스트라이크여야 할 뿐만 아니라. / ...와 같이 문학의 이중 과제를 정한 뒤 문단(그것이 무엇이며, 앞으로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문학에 과제라는 틀을 지우고 싶지 않다면, 산업이라는 개념 아래서 다룰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문단에 대한 '장르측' 비판에서 주로 드러나는 것 같다. 그건 결국 작가의 노동자성 이야기와 조직화(ㅇㅇ협회)로 귀결될 텐데, 조직화는 한편 독점적 지위의 강화와 생산수단 소유까지를 뜻하기 때문에, 그게 그저 또 다른 문단(그리고 또 다른 원한)을 만드는 결과를 넘어서려면 그쪽도 결국엔 스스로 문학의 미래상(과제)을 정해야 한다. 문학의 과제는 문학 행위 자체에 내재되어 있으며, 그것은 문학 활동의 역사적 총합의 전진 속에서 실현되는 것이라고 마음 편히 생각할 수 있는가? 마음이 점점 불편해지는 것이 바로 전진이다. 왜 시발 이런 얘길?
13
경기 여주로 사내 워크숍. 남한강일성콘도. 강가 옆에 있는 절 신륵사. 여주박물관 커피숍. 여주대교. 고깃집. 나랏님 이천쌀밥. 롯데프리미엄아울렛이천점. 이천도자기에서 잔 구매.
22
망원에서 머물다. 영 불편한 잠자리. 기타.
24
H와 골뱅이소면, 버섯/애호박 부침.
26
노래모음집 집회꿈 배포 시작. 다가오는 공연 개쫄림.
28
사자를 만나고 있을 때 사자가 연재 시작. 서기장 3부작이 시집보다 훨씬 나을 것도 같다는 생각. 던전으로 하혜희 시가 나갈 예정인데 곡창에서 에셉 맞불 연재로 나 자신과의 절망의 경쟁 끝에 결정해 보겠다. 에셉은 그냥 처쓰고 개발새발 만들면 그만인 것 같은데 시집은 시인선이 아니면 어렵다는 느낌. 도대체 얼마나 쓰루를 많이 받고 서로한테들 기대는 장르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묶어 놓고 보니 시집이라는 양식 자체가 맘에 안 차는 것이다. 이렇게 말해보고 싶다. 시는 이미 결론이 나왔고, 다른 예술들(그리고 예술이 아닌 것들)이 시의 시체를 잘게 찢어 가져가고 있다. 시의 독자는 여전히 남아 시인의 오라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시인은 생산되고 있지만, 시 자체는 뉘앙스 같은 뭔가로 남았다. 결과적으로... 시는 오늘날 한국에서 사실상 시인선이라는 형식과의 관계를 통해서 자신을 정의하는 무엇이 되었다. 따라서 시를 만약 쟁취해야 할 뭔가로 본다면(거기 무슨 이상이 있다면), 현대 한국에서 그것은 1차적으로 시인선이라는 양식과의 싸움 양태가 될 수밖에 없다. 시집이라는 물리적 종합 자체가 그, 싸워서 반드시 지는 판으로의 진입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곧 시집이라는 양식의 귀결이 시인선인, 이건 이상한 구조다. 점프를 좀 뛰어,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뭐냐면 시집최종원고(2).hwp를 숙려 끝에 거의 반려시켰다는 것. 생각을 더 해보자. 아니면 그 반대(생각을 중단시키기)가 맞을 수도 있다.
29
공연. 잘 못했지만 조촐하고 좋았다. 감사한 마음.
31
청소하고 단축근무. 좋은 기분으로 퇴근. H는 오징어볶음소면, 나는 부침을 만들고, 연어회와 함께 막걸리. 가요대제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