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혜희, 「천사로서의 당」, 「배교 대담」 / 《문학3 ― 비밀의 책》, 2020.
배교 대담
신앙을 잃은 것이 언제였어? 내가 신앙을 잃었어? 그럼! 신앙을 잃었다마다. 신앙을 잃은 것은 신앙을 얻자마자였다. 어린이였을 적, 경기도 어느 야산의 기도원에서, 임관체험 때, 매년 하는, 아이들을 관에다 넣었다 꺼내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별 가득한 밤하늘이 관 뚜껑과 함께 닫혔다가, 누군가에 의해 옮겨져 다시 일어났을 때, 흡혈귀처럼 내가 다시 일어났을 때, 그곳은 촛불이 잔뜩 켜진 방이었고, 먼저 옮겨진 친구가 옆에서 울고 있었는데, 나는 드디어 비밀을 깨달았던 것이다. 뭔가가 나를, 내가 태어나기도 전 영겁에 가까운 과거에서부터 사랑해 왔으며, 앞으로도 영겁에 가깝게 그러리라는 것을. 그건 아무도 숨긴 적 없는 비밀, 단지 내가 알아차리기만 하면 되는 비밀, 인정하기만 하면 얻을 수 있는 비밀이었다. 다들 그런 식으로 신앙을 얻나? 모르지. 궁금한 비밀이 좋지.
지금 나는 혜희를 대신해 쓰고 있다. 자기는 그런 건 안 쓴다고, 그런 건 나한테 맡기겠다고 했다. 아무렇게나 써보라고 재밌게만 써보자고 했다. 무슨 재미? 재미는 어디 다른 데 가서 찾으라고 해. 나는 지금 회사에서 이것을 쓰고 있다. 모니터를 보면서, 더없이 심각한 얼굴로 쓰고 있다. 일하는 척하면서 이것을 쓰고 있다. 이보다 재밌을 수는 없는 법이다. 비밀은 나눌 수 있는 비밀이 좋지. 어쨌든 그날 밤 나는 신앙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사실 그 전엔 믿는다는 게 뭔지도 몰랐다. 믿으라 하니 믿는 줄로만 알았고.
그런데 그 뒤로도 한동안 교회는 다녔지? 그랬던 걸로 되어 있다. 모태신앙인가 뭔가 해서, 열 몇 해 넘게 어머니의 교회에 함께 다니던 중이었다. 나는 신앙을 잃으면서야 어머니의 신앙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머니에겐 바로 그게 필요했던 거였는데, 몹시도 슬펐다. 어머니가 신앙이 필요 없는 인간을 키워내기 위해 신앙을 필요로 했다는 것이? 주제넘은 생각. 그건 자신에 대한 과대평가가 아냐? 맞아. 그러면 이건? 어머니의 신앙심이 신앙 잃은 자식으로 보답받았다는 게 슬펐다고 하면? 보답 같은 것도 아니야. 거기에 그런 게 들어갈 틈은 없어. 신앙을 이해한 거 맞아? 그럼 나는 정확히 뭐가 슬펐던 거지? 잃은 지가 오래라 점점 잊고 있는 거야. 계속 떠올려보도록 해. 떠올릴 수 있는 비밀이 좋지.
신앙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교회에 가지 않겠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었다. 어떻게 그 말을 할 수가 있었겠어. 그래서 지금 얘기하는 거야? 그렇지. 어차피 네 이름으로 나갈 테니까. 나한테 이런 걸 쓰라고 시킨 데 대한 복수야. 좋아. 천하고 비열한 비밀이 좋아? 좋아. 나는 친구가 다니는 먼 교회로 옮기겠다고 했다. 서너 달 정도는 버스를 타고 다녔다. 그러다 어느 날은 도저히 들어갈 수가 없었다. 좋은 목사님이 있고 좋은 말씀과 좋은 사람들이 있는 작은 교회였다. 그날 거의 한 시간 동안 아무렇게나 걷다가 집에 갔다. 시장통에 있는 교회였으니 아마 시장을 빙빙 돌았을 것이다. 아무래도 아는 사람과 마주칠 것만 같았다. 아무 일도 없었다. 그 다음 주엔 도서관에라도 가보려 했는데 어째선지 거기도 들어갈 수가 없었다. 대신 도서관 근처 공원 벤치에 앉았다가 갔다. 버스를 탈 만한 거리였지만 걸어서 갔다. 걸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집에 들어가면 한 것 같지도 않은 생각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을 떠날 때까지 매주 공원들을 찾아다녔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책을 들고 나갔다 왔다. 갔다 왔니? 갔다 왔어. 갔다 왔어? 어 왔어. 매주가 거짓말이었다. 지금 일하는 시늉을 하고 있는 것처럼. 그러다 가끔은 정말로 갔다. 어쩐지 도저히 돌아다닐 수 없었던 날이 있어서, 그런 날엔 만사를 온통 모욕하는 것 같은 기분으로 앉아 있다가 끝나자마자 나왔다. 이래서 도저히 들어올 수가 없었던 거였지? 인과만 갖고서는 어떻게 할 수 있는 이 일을, 내가 이런 식으로 욕되게 해도 되는 걸까? 내가 만약 진실로 세계를 대하겠다면 감히 이 사람들을 반대로 전도해야만 하는 걸까? 설득해야만?
팔자 좋은 얘기네. 뭐로 뭐를 대한다고? 이건 어때? 그 이야기에 배교다운 부분이라고는 없고 바닥 모를 미성숙뿐이야. 하지만 봐, 어쩌면 배교가 그 구조상 미성숙한 것 아냐? 그러면 신앙 쪽이 성숙한 거지?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그런데 이런, 그런 건 도저히 인정이 안 된다면? 아주 엉뚱한 이야기로 서로를 묶어주려는 일 아냐? 서로와 세상을 용서해주기 위해? 슬픔으로 파묻어버려? 파묻혀버리고? 이제 확실히 기억이 났어. 슬픔이 슬펐던 거지. 싫고. 그게 어쨌다는 거야? 용서하기 위해서라면 차라리 나은 편이지 않아? 다른 악랄한 종류의 망상들도 많아. 그러면, 그러면 어때, 그 구조상 성숙이 신앙의 다른 말이라서, 아무도 숨긴 적 없는 비밀이고, 닷새나 엿새를 개처럼 기고 난 다음 날에,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이미 죽은 인간인 듯이 일어나며 결국 눈물과 함께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라면, 그걸 인정할 때까지 죽었다 깨는 지옥훈련이라면? 그것이 우리 계급의? 그러면 어때? 그래도 되는 거야? 성숙이라는 것이? 비밀이라도 아이의 비밀이 좋지.
아, 그렇다면 이제 내가 일터에 있는 것이 예배와 같은 일이군? 내가 너를 내세워 속이고 있고? 혜희는 그렇게 말한다.
그 모든 일들의 묘한 기쁨을 또 알고 있다. 걸으면서, 또는 회당에서. 내 생각엔 그때부터 뭔가가 시작됐던 게 아닌가? 일테면 신앙이. 그래서 나도 여기에 있고, 나는 아주 악마 같은 친구를 사귄 듯이 너와 얘기하고 있다. 비밀이라도 우리의 비밀이라야 좋지, 아니면 관심 없어. 그래서 정확히 뭘 용서할 수 없다는 거야?
웹진 《문학3》 ‘비밀의 책’ 코너에 하혜희의 시 「천사로서의 당」과 산문 「배교 대담」이 실렸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