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12월기
1일
곡창을 다년간 운영하면서 알게 된 바가 이것저것 있는 것 같다. 가장 크게 하나는 편집권?편집력?에 대한 것이다. 도서가 공동생산물임은 몇 번을 말해도 부족한데, 만약 우리가 원고 부분의 생산자명을 보고 그 생산물을 가늠할 수 있다면, 다른 부분들을 맡은 이름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요즘 잘나가는 '소규모출판사'(인디를 뜻하는 게 아님)들은, 바로 그런 개인들의 가명인 셈이다. 편집권을 획득하는 일과 편집능을 획득하는 일의 성질이 다르고, 둘 모두 어떤 연합력의 시험인 것은 맞는데, 간단하게는 원고생산자에게 편집권을 '분배'하는 것만으로는, (공동생산물로서의) 매체를 구성하기에 부족하다는 것이다. 매체-필드는 오로지 원고생산자들의 각축장 같지만, 실은 그보다는 편집력의 각축장이다. ...그런데 이 편집력(편집권과 구분되는)이 구조적으로 제시되기도 하는 것이다. 문예지를 일종의, 편집력의 시연장(또는 원고생산능의 시험장)이라고 하면, '문단의 문제'라고 할 때... 그것은 편집권으로부터의 소외(원고생산자로서)뿐 아니라 편집능(매체라는 공동생산물의 참여자로서)으로부터의 소외도 실은 가리키는 것이다. 따라서 '개역 시도'들은 이중적인 성격을 띤다.
2일
전세계약. 이젠 나도 임차인.
3일
주민센터에서 확정일자 받다. 은행에서 대출신청.
4일
ㅅㅎ의 생일.
9일
중기청 대출 신청 사인.
14일
오늘부터 너무 춥다. 이사가 걱정.
17일
어떤 작품의 무엇이 노동자와 자본가를 '상징'한다는 것은 없다. 노동자와 자본가는 등장하는 것이다. 도리어, 노동자와 자본가가 등장은 해도 상징하지는 않음으로써 역의미를 담는 우파적 접근이 더 흔하다. 한편 좌파는 잘못 상징시키는 오류가 흔한데, 쟁니 같은 현상이 아마도 그런 오류들의 결론일 것이다. 지지선언은 해도 철회선언은 못하는 쓰레기 문필가들. 철회할 생각도 필요도 없는... 비평가니 작가니 하는 생활인들이 자신의 나와바리에서 펼치는 기상천외한 문필곡예와, 그가 사회적인 발언의 독배를 들었을 때의 한심한 이빨 빠짐 사이의 극렬한 언밸런스가 나를 실망시킨 것이 하루이틀이 아니다. 하다못해 독배를 던져버리는 용기조차 없다. 나는 이 '언어의 기술자들'에게, 생계가 아니라 세계에 대해 생각해볼 충분 넉넉한 시간과 자금이 사회적으로 투여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노동계급을-대표하여-말한다고 하는, 전통적인 분업적 사고와 구분되어, 오늘날에는 다음 상황에 대한 고려가 요청된다.
1) 문필가들의 문예술 자체가 전 인민에 분배되는 상황
2) 노동계급의 계급처지 자체가 문필가들에게 분배되는 상황
그러한 고려 끝에는, 1)과 2)의 종합 현상인, 노동계급 출신-문필집단의 형성과 그 안에서 내용/형식의 양극화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중략) 적으로부터 배울 것, 적들을 흉내내지 않을 것. 적들을 흉내내는 예: 눈에 불을 켜고, 표절이라면 아주 지랄 발광들 하는 거.
20일
잿불속의군단. 하리보 젤리를 먹다가 떼운 데가 떨어짐.
21일
치과에서 치료.
23일
정신병이 실로 가정, 사업장, 단체, 즉 사회적 재해라면(실로 그러한데), 세상이 이따위로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개씨발놈의 알약들 = 1984 그 자체. 만약 남산타워에서 사실의 괴전파발송으로 백만이 환청을 겪는다면, 진실로 이럴 수 있겠나? 세계의 현상태가 이와 같다. 만약 마포구의 개스폭발로 구민들의 세로토닌 분비능에 장애가 생긴다면? 만약 정미 과정 중에 망상을 유발하는 약품성분이 쌀에 함유되어 버린다면? 진실로 이럴 수가 있나? 마포구의 개스폭발과, 우울증을 유발하는 감각대상들은 과연 어느 정도까지 구분되는가? 그것은 구분되어야 하는가? 우리가 상시적 비상사태를 살고 있다는 것은 바로 이런 뜻이다.
29일
내일은 잔금 치르는 날. 이래저래 심란하다.
30일
전세금을 전달. 영수증 수령. 이사 갈 집을 체크. 굴짬뽕을 먹음.
곡창을 다년간 운영하면서 알게 된 바가 이것저것 있는 것 같다. 가장 크게 하나는 편집권?편집력?에 대한 것이다. 도서가 공동생산물임은 몇 번을 말해도 부족한데, 만약 우리가 원고 부분의 생산자명을 보고 그 생산물을 가늠할 수 있다면, 다른 부분들을 맡은 이름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요즘 잘나가는 '소규모출판사'(인디를 뜻하는 게 아님)들은, 바로 그런 개인들의 가명인 셈이다. 편집권을 획득하는 일과 편집능을 획득하는 일의 성질이 다르고, 둘 모두 어떤 연합력의 시험인 것은 맞는데, 간단하게는 원고생산자에게 편집권을 '분배'하는 것만으로는, (공동생산물로서의) 매체를 구성하기에 부족하다는 것이다. 매체-필드는 오로지 원고생산자들의 각축장 같지만, 실은 그보다는 편집력의 각축장이다. ...그런데 이 편집력(편집권과 구분되는)이 구조적으로 제시되기도 하는 것이다. 문예지를 일종의, 편집력의 시연장(또는 원고생산능의 시험장)이라고 하면, '문단의 문제'라고 할 때... 그것은 편집권으로부터의 소외(원고생산자로서)뿐 아니라 편집능(매체라는 공동생산물의 참여자로서)으로부터의 소외도 실은 가리키는 것이다. 따라서 '개역 시도'들은 이중적인 성격을 띤다.
2일
전세계약. 이젠 나도 임차인.
3일
주민센터에서 확정일자 받다. 은행에서 대출신청.
4일
ㅅㅎ의 생일.
9일
중기청 대출 신청 사인.
14일
오늘부터 너무 춥다. 이사가 걱정.
17일
어떤 작품의 무엇이 노동자와 자본가를 '상징'한다는 것은 없다. 노동자와 자본가는 등장하는 것이다. 도리어, 노동자와 자본가가 등장은 해도 상징하지는 않음으로써 역의미를 담는 우파적 접근이 더 흔하다. 한편 좌파는 잘못 상징시키는 오류가 흔한데, 쟁니 같은 현상이 아마도 그런 오류들의 결론일 것이다. 지지선언은 해도 철회선언은 못하는 쓰레기 문필가들. 철회할 생각도 필요도 없는... 비평가니 작가니 하는 생활인들이 자신의 나와바리에서 펼치는 기상천외한 문필곡예와, 그가 사회적인 발언의 독배를 들었을 때의 한심한 이빨 빠짐 사이의 극렬한 언밸런스가 나를 실망시킨 것이 하루이틀이 아니다. 하다못해 독배를 던져버리는 용기조차 없다. 나는 이 '언어의 기술자들'에게, 생계가 아니라 세계에 대해 생각해볼 충분 넉넉한 시간과 자금이 사회적으로 투여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노동계급을-대표하여-말한다고 하는, 전통적인 분업적 사고와 구분되어, 오늘날에는 다음 상황에 대한 고려가 요청된다.
1) 문필가들의 문예술 자체가 전 인민에 분배되는 상황
2) 노동계급의 계급처지 자체가 문필가들에게 분배되는 상황
그러한 고려 끝에는, 1)과 2)의 종합 현상인, 노동계급 출신-문필집단의 형성과 그 안에서 내용/형식의 양극화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중략) 적으로부터 배울 것, 적들을 흉내내지 않을 것. 적들을 흉내내는 예: 눈에 불을 켜고, 표절이라면 아주 지랄 발광들 하는 거.
20일
잿불속의군단. 하리보 젤리를 먹다가 떼운 데가 떨어짐.
21일
치과에서 치료.
23일
정신병이 실로 가정, 사업장, 단체, 즉 사회적 재해라면(실로 그러한데), 세상이 이따위로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개씨발놈의 알약들 = 1984 그 자체. 만약 남산타워에서 사실의 괴전파발송으로 백만이 환청을 겪는다면, 진실로 이럴 수 있겠나? 세계의 현상태가 이와 같다. 만약 마포구의 개스폭발로 구민들의 세로토닌 분비능에 장애가 생긴다면? 만약 정미 과정 중에 망상을 유발하는 약품성분이 쌀에 함유되어 버린다면? 진실로 이럴 수가 있나? 마포구의 개스폭발과, 우울증을 유발하는 감각대상들은 과연 어느 정도까지 구분되는가? 그것은 구분되어야 하는가? 우리가 상시적 비상사태를 살고 있다는 것은 바로 이런 뜻이다.
29일
내일은 잔금 치르는 날. 이래저래 심란하다.
30일
전세금을 전달. 영수증 수령. 이사 갈 집을 체크. 굴짬뽕을 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