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12월기

23
(옛날옛적에 써뒀던 것)
내게 익숙한 패턴에 따르면 이렇다. 에셉이 순문학에 육박하는 경우가 있고, 순문학과 구분되지 않는 경우가 있고, 순문학과 구분되는 경우가 있다. 내가 읽기에, 개개 에셉들의 이른바 설정(기이/기발성)이란 것은 3개의 방향으로 작용한다. 1) 뭔가에 대한 비유, 2) 사고실험인 측면, 3) 장르 전통과의 상호작용... 그런데 설정만 있는 것이 아니고(설정집이 아니고)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원하든 원하지 않든 순문학 되기/육박/구분이라는 결과를 향해 간다. 되기(그 이야기가 경험에 가깝다면), 육박(그 이야기가 철학에 가깝다면), 구분(그 이야기가 도식에 가깝다면)... 무슨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를 떠나서, 각기의 경우 고유의 미덕을 보존하고 개성적 좋음이 있으려면, 설정과 이야기는 어떤 식으로든 상호작용해야 한다.

에셉(적인 것들)에서 기술-제도-인지 격차가 드러나는 것은 거의 당연한데, 그게 아주 엄청 대단히 안일한 방식으로도 가능하다. 기이/기발성과는 별개로. 그래서 내가 보기엔 이 장르와 관련하여 특별 숙고하여 경계해야 할 특정한 종류의 태도가 있는데, 요약하자면 '히히 요건 몰랐지'일 것이다. 양식적으로는 사실상 그 생각과의 싸움이라고 하면 어떨까. 결과적으로 우둔한-인간들-이야기가 되지 않도록 만든다는 것이 내가 보기엔 이 장르의 구조적 사명이다. 그런데 도리어, 그 일에 대단히 적극적이라면? 하려는 말의 고갱이를 남겨놓고 보니 '요건 몰랐지'일 뿐이라면? 그것이 바로 실패다.

살자쑈...라는 것도 그냥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진정 필요한 것은 아마도 살자쑈가 아닌 계폭일 것이다. 방금 기획 도서 하나 떠올름 『대탈출, 넷셀렙!』...

열등감 → 자랑 → 질투 삼 → 억울함 → 열등감... 이 악무한의 여러 버전 중 하나가 살자쑈로 생각된다. 그야말로 집단 정신이 똥구덩이에 처박히고 있다. 열등감을 자극하는 온갖 것들이 넘쳐난다. 그 자기개발이란 것도 어떨까, 내게는 협동개발의 실패로 보인다. 열등감 → 자랑 사이의 비어 있는 물적 공간을 채우기 위한 것이다.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은 인간적인 마음이, 협동실패(여러 의미에서)로서의 자기개발로 우그러지지 않게 하려면 어째야 할까... 강연 같은 것들의 쌍방 폭주도 그런 우그러짐을 피하려는 몸부림이면서 그 자체다. 우리는 '다른 종류의' 교육에 대한 분명한 필요를 느끼고 있으며, 서로를 '적절하게' 교육시킬 방법을 찾아 맹렬히 헤매고 있다.